나는 ‘명탐정 코난’ 광팬이다. 어린 시절 처음봤던 만화책은 명탐정 코난이다. 1권에 있는 첫 번째 사건이 주는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한다. 롤러코스터 살인 사건은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여전히 내 머리속에 자리 잡고 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잔인한 살인 방식이 주는 공포와 묘한 긴장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만화 주인공 코난은 초등학생이다. 본래 주인공 쿠도 신이치는 고등학생 탐정이다. 롤러코스터 살인에 휘말려 사건을 해결할 당시 수상했던 용의자를 추적하다 변을 당한다. 일명 검은 조직은 당시 연구하던 독약을 신이치에게 먹인다. 이 사건으로 신이치는 어린 아이로 변한다.
아이로 변한 주인공은 갑자기 찾아온 여자 주인공에게 둘러댈 이름을 생각하다가 셜록홈즈 작가 이름을 빌려 코난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한다. 나는 이때 셜록홈즈를 알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셜록홈즈 주홍색 연구를 구매했다. 어릴적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꺼내서 읽었다. 오래된 책이 갖고 있는 냄새와 누렇게 바래진 종이색이 나름 매력적이다.
주홍색 연구는 왓슨 박사가 전쟁에 다녀온 이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단계로 시작한다. 처절한 전쟁을 거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왓슨 박사는 돈을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하게 되고, 지인 소개를 통해 셜록홈즈를 알게 된다. 생활 패턴이 다른 그들이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어우러져 지내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사건을 맞이한다. 셜록홈즈가 보여주는 추리력에 감탄한 왓슨 박사는 수사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세상에 공표하겠다고 말한다. 살인 사건 용의자를 특정하고 이를 체포한 사람은 셜록홈즈다. 다만 셜록홈즈는 자신이 이뤄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예상한다.
실제로 책 말미에 피의자 체포는 경찰이 했으며, 아마추어 탐정 셜록홈즈는 사건을 해결한 형사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온다. 셜록홈즈가 세운 공을 남들이 대신 누리는 상황에서 왓슨 박사는 억울함을 대신 느낀다. 박사는 모든 과정을 기록했으니 이를 세상에 알린다는 포부를 밝힌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명탐정 코난 속 대사가 떠오른다. 셜록홈즈와 형사들이 사건을 해결하며 진실을 찾아냈다. 왓슨 박사 또한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룸메이트 셜록홈즈가 사건을 파헤치고 실마리를 잡아냈던 과정이 묻혀서는 안된다는 판단이다. 이 또한 ‘진실은 언제나 하나’에 부합한다.
주홍색 연구를 읽다가 광기를 느꼈다. 혹자는 사랑이 가진 힘을 생각하고, 운명을 생각했을 수 있다. 나는 광기가 가득한 인간을 봤다.
살인자는 복수를 위해 살인을 했다. 연인을 잃은 슬픔을 살인으로 마무리했다. 복수심에 살인을 했다는 사실에 광기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느낀 광기는 살인자가 복수를 위해 보낸 시간과 방식이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로 알려져 있다.
수십년 동안 복수를 위해 살았던 살인자에게 일부 광기를 느낀다. 다만 내가 정말 광기를 느낀 부분은 살해 방식이다. 살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든 이를 만나 선택권을 준다. 두 가지 알약 중 하나는 독약이며 다른 하나는 무해한 약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한 피해자는 죽고, 남은 하나는 먹은 살인자는 생존한다.
이건 광기다. 수십년 동안 계획한 살인을 운에 맡긴다. 신께서 죽음이 담긴 알약을 자신이 아닌 살해 목표물이 선택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주홍색 연구를 읽은 이후 여운 보다는 깔끔함이 느껴졌다. 명탐정 코난을 수없이 읽은 덕분일까? 사건 하나마다 감정이입하지 않으려 한다. 셜록홈즈가 세운 가설과 추리 과정을 천천히 읽어본다. 사건이 주는 끔찍함은 이내 없어지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셜록홈즈가 부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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